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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드라마(TV)

[예능] 삼시세끼 : 금요일, 밥상머리에 모여앉아.


tvN 삼시세끼.
 


 
 
한국 사람이 자주 입에 달고 사는 말 중에 단연 1위.
 
"뭐 먹지?"
 
"밥 먹었어?"
  
먹는 걸 건드리면 당연, 보는 게 인지상정. 자고로 예능과 먹거리의 결합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게 나올 리 없고, 나온다 해도 재미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먹거리 예능이 대박났다고 한다. 
 
<삼시세끼> 이 예능에 나오는 밥상머리엔 특징이 있다. 둘이서 시작해서 여럿이 된다는 점이다. 대학가에서 술판이 벌어지면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 듯이, 그 모이는 재미에, 그걸 구경하는 재미에, 왁자지껄 쓸데없어 보이는 시답잖은 잡담들이 시청자들을 붙잡는다. 모이고 모이고 모여서 밥상머리에 앉아 갓 지은 밥을 입에 넣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정말, 별거 없는 예능이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이 프로그램자체가 그냥 생겨먹은 대로 놔두고 본다. 그래서일까, 시골 밥상머리에 대한 "호기심"과 "끌림"을 건드리고 있다.
 
끌린다, 라는 건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에서 주로 작동하는 심리인데, 삼시세끼의 식사는 나에게 결여된 그 무언가를, 그 전설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환상적인 밥상"을 보여준다.
 
뜨끈한 국물에 갓 지은 밥 떠서 구운 김을 올려 먹는 행위 속에 포함된 여러 정서들이 구수하다. 현실의 나는 콘트리트 벽에 기댄 채, 쭈구려 앉아 즉석식품을 데워 먹는 꼴이지만, TV속, 구수한 그 정서를 놓치기 싫은 마음이 든다고나 할까. 보다보면  따뜻한 거 먹고 싶은 강한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냥, 외롭기 때문일 수도....

<삼시세끼>가 왜 인기 있을까, 따져보니. 각자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로망을 건들이는 부분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엔 과거를 들여다보게 됐다. 뜻밖의 노스텔지아다.

 

별거없이 밥을 해먹는 일상의 풍경이 정겹다. 매 끼니를 혼자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누군가와 끼니를 꼭 함께 해결하는 그 모습에 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없는 것에 끌리는 게 당연하다면, 그래서 이 프로가 인기가 있는 것일지도. 각박하고, 공허해서, 다들 그렇게 케이블 방송에서 하릴없이 밥을 해먹는 이야기를 돌려보는 것일지도.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풍성하게 존재하다가 가고 싶다. 다급한 마음에 앞으로 내가 무엇일 될까?를 고민하다가도 문득, 놓치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김중혁 작가의 책 제목처럼, 뭐라도 되겠지 싶다.

 


덧, 쓸데없는 넋두리.


삼시세끼를 보고, 뜬금없이 개인적인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지방을 전전하며 살 때, 나도 따라 전국을 전전했다. 그런데, 딴에는 그렇게 돌아다녔던 여러 지역 중에서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특정 언덕이 하나 있다. 기억으로는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있던 곳이었다. 판자집들이 즐비했고, 골목골목 너무 복잡하여 다니는 사람마다의 길이 제각각일 정도로, 누가 보아도 못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즉 아파트에서 한 번을 못 살아봤다.

 

여하튼, 그런 볼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동네에 끝내주는 언덕이 있었다.(이게 대단한 거다) (물론, 끝내주게-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소리지, 절대 그곳이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시에서 운영하는 자그마한 독서실을 끼고 나오면 탁 트인, 인위적인 언덕이 위용을 자랑했다. 포크레인으로 깎아 만든 게 아닐까, 어릴 적에도 여상히 여겼다.

 

그 당시에 한 손에 홍콩에서 고모가 보내온 소니 카세트 테이프를 들고 참으로 많이 쏘다녔던 것 같다. 친구도 없었고, 하도 많은 전학으로 내가 사는 지역의 이름 또한 기억하기 힘들다. 그땐 철저히 나 혼자였다. 부모님도 형제도 함께 해주지 않았던 시절이라 외로웠을 법도 한데 나는 그 시절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만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참으로 없이 살았던 그때가 나의 노스텔지아인가 보다. 하도 없으니, 나만의 것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끈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했다.

 

그러고 보니, 그당시 저녁엔 별구경도 했었지, 언덕길 오르던 더운 여름도 생각난다. 겨울에 뭐 주워먹을 게 없나, 시장을 기웃거리던 일도 떠오른다. 어린이날 사달라고 조르던, 그리고 끝내 받아내고 말았던, 의사놀이 장난감도 정확히 기억한다.

 

가끔 깜깜했던 달동네에 대한 향수를 TV에서 찾곤한다. 그리고 끼워맞춘 기억을 떠올린다. 깜깜했다. 그 언덕이 있던 집에 관한 기억은 아버지가 만든 집이라는 것과, 그리고 저녁엔 무척이나 어두웠다는 것밖에 없다. 일명, 달동네의 듬성듬성 자리를 차지 한 주황색 가로등과 해결되지 않는 어둠이 공존하는 그곳 말이다. 특히 겨울에는 메밀묵과 찹쌀떡을 팔던 눈 쌓인 골목길. 그시절에 대한 모든 것이 기억에서만 존재한다. 그립고 보고 싶어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지 오래다. 사진 한 장 없는 추억이란 쓸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