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영화에서 다룬 (믿을 수 없지만 실화라니) 사건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딱 들어 맞아야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독재의 시작
그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지위에 있고, 그 힘을 남용할 의자가 충분하다면 독재의 비극은 시작될 것이다.
비루한 관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룬 주제가 떠오른다. 악의 평범성과 그들의 논리.
"이런 끔직한 일(폭력)을 벌인 이유가 무엇인가?"
-> "이유? 이유가 있나, 그냥 관례가 그렇다"
원래 그런 거라는 듯 관리자는 웃는다.
비겁한 언론
그 시절, 방송의 주된 목적은 투쟁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론>
결국,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하나쯤은 물러설 수 없는, 양보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양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지키고자 하는 선을 멋대로 넘어서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선이라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것이며, 누구나 당연히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 신념과 믿음은 국가와 국민에 관한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고 국민이 곧 국가이다.
과연, 우리가 기본이라고 믿고 있던 신념과 상식이 무너지게 되는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면,
과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누가 나설 것인가?? 의문이다.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외침은 쓸쓸할 뿐이다.
국가가 나서서 독재를 시작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을 탄압한다. 공포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 눈 감고 귀 막으며 당장의 순간을 숨는다. 그러나,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우리는 깨닫는다.
침묵했던 대가의 무게를.
그리고, 외로운 투쟁에 대한 희생을.
이 나라에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외치신 그분의 용기와 희생을 잊지 않는다. 아직 대한민국엔 이런 분들이 많이 필요하다.
덧,
한참 영화 <변호인>이 흥행하고 있을 때, 일부러 안 봤다. 보면 속이 터질까봐. 이제서야 보고 느낀 점은 이 영화가 만들졌고, 상영되었으며, 대중의 외면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점이다. 아직 그 사건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리고 그것에 공감해주는 천만 관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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