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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특정 외국 작가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순간 알게 되는 사실 하나. 한국의 인문학 번역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과 비전문적이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제대로 원서의 내용을 파악하려면, 우선 제 2외국어를 공부해서 원본을 읽든지,

아니면 타국에서 제대로 번역된 번역서를 봐야하는 게 정설이다. 이도저도 안 되면, 번역하는 역자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가령, 은퇴를 앞둔 교수님이나 번역으로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전공자를 택해야 한다는 소리. 다시 한 번 더 외국어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쓸데없지만) 이 책을 읽고, 또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냥 서 있는 건물, 지나가는 개, 낡은 모텔에 대한 집착, 한때 소의 일부였던 고기를 주문하는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렇게 맛깔나게 글로 남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떠오른 작가는 몇 없다.

 

AJ 제이콥스 / 메리 로취 / 데이비드 세다리스 정도가 되려나?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빌 브라이슨이 떠오르는 작가의 전부다.

 

별 시덥잖은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수도 있구나, 게다가 재미도 있고, 게다가 어느 정도 인기도 있네. 그리고 돈도 벌다니. 대박, 부럽다. 이런 단순한 생각을 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 : 발칙한 미국학이 제목이다.

 

이 책의 부제는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다. 와아, 신난다.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을 내가 알게 되는 거구나!! 야호!!! -_-. 땅투기에 성공한 아줌마가 된 기분이다. 이렇게 미국에 대해 텍스트를 통해서 야매로 접한,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당당하게 얘기한다. 백프로 미국 사람 만난 적도 없고, 물론 가본 적도 없다.)

 

"너무 해맑다. ...미국인."

 

나의 죽음조차도 가족을 위한, 희망의 보험상품으로 승화시키는 뇌구조와 조그만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더 큰 불편함을 감내하는 인내심. 우울증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약물 사랑. 미국인은 대략 2억 정의 총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사람들이 꽤나 총을 쏘고 싶어하는 나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사람들의 긍정 과잉과 끝내,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재앙수준의 병신미 넘치는 사건들. 문득, 낄낄 웃고는 있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건 아마도 한국도  그다지 사정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겠지. 블랙 코미디를 제대로 느끼고 싶으면 정치를 공부하면 된다는 말처럼, 헛웃음이 필요할 때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져보자.


분명, 암을 유발할 것이다.

 

 

주절주절 메모

 

다양성의 과잉에 대해서:

작가는 마침내 뭐가 잘못됐는지 알게 된다. 바로 모든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21세기 현대인의 새로운 질병으로서 선택장애라는 말이 있는데, 그 근원에는 다양성의 과잉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단호하지 않게) 말해본다.

  

21P

종업원이 숨이 막힐 정도로 거창하고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서 저녁 특선 메뉴를 설명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때 소의 일부였던 거 뭐 없나요?" 라고 말할 수밖에...

 

 

51P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적은 없지만, 그것은 단지 내가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64P

소비하는 즐거움/ 진지한 독서가를 위한 도구 라고 적혀있는 카달로그를 받았다.

 

 

 

139P

아버지는 에어컨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값이 30달러 이상 나가는 것이면 무엇이든 부자연스럽다고 여겼다.

 -미국 국민은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135P

아내는 나이키 표정(일단 한 번 해봐)이라 불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166P

추수감사절의 가장 근사하고 숭고한 측면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할 공식적인 기회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226P

무언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왜 "덕분에 이러저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어." 라고 말해야 할 것을 "덕분에 이러저러 해야 함을 배웠어." 라고 말할까.

 

 

 

덧,

 

그냥 하고, 당장하는 삶을 살라는 말을 듣고 그냥 했다가 몸이 축났고, 당장했다가 손해를 보았다. 그래도 뭐, 별 수 있나. 그냥 하는 수밖에.... 아.... 잉여력 없어서 블로그질도 이젠 못 해먹겠다...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