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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성적 낙관주의자 VS 타타르로 가는 길

<이성적 낙관주의자> VS <타타르로 가는 길>

 

낙관과 비관의 만남

 

이 두 책을 함께 리뷰로 올리는 이유는 서로 다른 시선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저자가 <타타로르 가는 길>의 저자인 로버트 카플란을 까는 글이 있어서 비교해서 보기 시작했다;)  

 

자연파괴, 자원고갈, 전쟁, 빈곤 등, 인류에 대한 갖가지 비관론적 견해에 맞서는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글은 중동과 중앙 아시아의 암울한 미래를 예측한 기행기인 <타타르로 가는 길>과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참으로 다르다.


 

우선, 서술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타타르로 가는 길>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견이라면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자료를 바탕으로 펼치는 논리적 주장에 가깝다.

 

<타타르로 가는 길>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생생하게, 직접 경험한 여행기을 담고 있지만 그것으로 얻은 결론은 비관적 미래다. 예를 들면, 로버트 카플란은 서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원 착취와 환경 파괴로 인해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양극화 현상을 '빈민가를 달리는 리무진'에 비유했다.

 

리무진 안을 호화롭고 편안하게 꾸미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들이는 동안 바깥의 상황은 더 나빠진다는 비유다. 한 마디로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타타르로 가는 길>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준 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등한시 되어왔던 중동과 중앙 아시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알리고 있는 이 책은 미국이라는 (자칭 세계 경찰) 나라가 이를 좌시해서는 안 되는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이 작가는 <제국의 최전선>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에세이 여행기를 참으로 잘 쓴다. 그래서인지 주제는 무겁고 서술방식은 가볍다.

 

 

 

 

반면, <이성적 낙관주의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우선, 낙관주의자와 이성적이라는 말은 참으로 안 어울린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책의 제목을 이렇게 대치되게 선택한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책의 마지막에 붙어있는 참고 자료만 봐도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인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낙관주의자'이지만, 글의 구성은 매우 치밀하다. 정확한 첨부 자료들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사상은 낭만적인데, 글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이성적이다.

 

저자는 말한다.

 

"비관주의는 언제나 흥행 실적이 좋았다. 삶이 좋아진다는 믿음에 대한 집단적 거부, 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다."

 

"지난 200년간 모든 탑뉴스는 비관주의자들이 장식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고 말하면서 기금을 모으는 자선 단체는 없다. 기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한마디로 그동안 '좋은 뉴스'는 '뉴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인류는, 그리고 이 사회는 더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다. 빈곤은 줄어들었고, 자원의 고갈은 오지 않았다. 저자는 그동안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위기론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들여다 보라고 말한다.

 

 

 

덧,

 

-횡설수설 주절주절 리뷰를 쓰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낙관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든, 비관적으로 바라보든" 그건 각자 개인의 몫이다. 게다가 이건... 뻘소리인데, 지금 내 개인의 삶이 가장 큰 문제인데 인류를 바라보는 시선 따위 -_-;;;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요즘은 낙관과 비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어차피 모든 일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른다는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더 문제인 것 같다.

 

 

덧,

회사에서 인사 이동이 있었는데... 뭐, 까라면 까는 거고, 구르라면 굴러야 하는 초라한 직장인에겐 자비가 없다. 요즘은 팬질로도 나의 멘붕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 같다.

 

- 비공개로 돼 있는 책리뷰들을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언제 다 정리해서 마무리를 지을지.... 깜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