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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희박한 공기 속으로, 실패를 모르는 문장들, 표류, 천천히 스미는, 앨저넌에게 꽃을



[희박한 공기 속으로]


인투더와일드, 퍼펙트 스톰, 제너레이션 킬 등. 

이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원작 소설이 영상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원작이 주는 리얼함 생동감과 현장감을 영상에서도 꽤나 잘 살렸다. 

확실히 영상 보다 글이 더 낫다. 물론, 내 기준(분)이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 재난물 좋아하는 편이다. 

주인공이 말도 안 되는 난관을 극복하고, 부딪히고 싸우는 과정을 팝콘 먹으며 멀리서 

불구경하고픈 못된 심리 같은 거랄까. 


실화이기 때문에 더욱 와 닿는 점이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와 긴장감이 철저하게 1인칭이다보니, 

좀 색다른 재난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자연 묘사나 산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봐야 할 책 같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금정연이라는 아이콘에 대해서. 

유머가 있는 사람을 신뢰하는 나에게 금정연이란 이름은 은행 담보 대출을 

바로 내줄 수 있는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제목이란 말인가. 

시시콜콜한 자기비하와 혐오 그리고 자학을 넘어선 해학. 


<마감>을 주제로한 그의 심리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코미디다. 


"악마에게 뭔가를 파는 건 인간의 전통이다"


"시도하기 위해 희망할 필요도 없고지속하기 위해 성공할 필요도 없습니다.(롤랑 바르트)"

> 이 한 문장만으로도 난 충분히 책의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모르셨다면 이제 아시면 됩니다."


> 아님 말고지. 뭐가 더 있나.


"이래서야 직업인이라고 할 수 없다어른도 아니다창백해진 얼굴로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그는 하릴없이 국어사전에 마감시한을 검색해 본다그리고 사색이 된다."


"그 책들이 널리 읽히는 데에는 분명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다."


한줄평 :

-내가 직접 겪고 나자 그 말이 그 말인지 알겠네-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표류>] 


전쟁 아포칼립스, 좀비 종말, 자연재해 중에 가장 무서운 상황은 무엇일까.

무엇 하나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냥 일찍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표류>는 어떻게 보면 르포 같다. 작가가 직접 겪은 생존의 기록이다. 


"험난한 표류를 통해 나는 생가보다 훨씬 강인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다가 나의 숱한 약점과 절망들을 시험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절박한 사람이 결국 영적인 존재, 또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홀로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육체적 한계과 정신적 한계를 동시에 뛰어넘은 작가는 말한다.

그런 경험조차 뭍으로 돌아와 몇 년이 지나자, 희미해져 간다고. 


나는 그 마침표 같은 말에 눈이 갔다. 

그가 해낸 거대한 모험과 기가 막힌 생존 스토리보다 더 흥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또 그것을 망각하고 다시 번뇌로 들어간다는 소리지 않은가. 




[천천히 스미는] 


부제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이다.


마치 글로 사진을 찍듯이 영미권의 풍경을 물씬 느낄 수 있다. 

20세기 우리가 외화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정취를 글에서 맡을 수 있다는 장점과

그럼에도 타국 사람이기에 백퍼센트 이해할 수 없는 단점이 혼재해 있다. 


"이슬에 젖은 풀과 그 강렬한 진초록 내음을 언제나 실어나르는 귀뚜라미 울음이 일정하지만

띄엄띄엄 들린다. 각각 상쾌하고 차가운 은빛 3화음으로, 하나의 작은 사슬로 연결된 고리 

세 개가 하나씩 미끄러지듯 운다."


"이동하는 야생동물은 새든 짐승이든 늘 우리의 시선을 끈다. 

이런 이동은 지구의 거대한 흐름과 동물의 삶을 연결하는 듯 보인다. 

대륙 규모의 이삿날임 셈이다. 증식하고 번식하려는 원초적 본능의 부름에

갑자기 일족과 종족 전체가 움직인다." 


어렴풋이 흉내나 낼 뿐, 따라잡지 못할 영역이란 게 있단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감성과 재능이리라. 작가의 재능이 부러울 따름이다. 




[앨저넌에게 꽃을]


작가의 문체와 심리 묘사는 정확하다. 

대니얼 키스는 빌리 밀리건으로 처음 접했다. 


읽다가 뭐가 이리 재밌지? 작가가 누굴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바로 유명하신 분이란 걸 알았다. 


이 작품을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글쎄 왜 영상화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무튼 이 다루기 힘든 서사를 소설이 아닌 영상으로 굳이 봐야하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도 일본 배우를 통해서 굳이? 


아무튼 소설의 서사는 매우 단순한 편이다. 

지체 장애자가 천재가 되는 과정과 다시 바보가 되는 서사 구조이다.

별 거 없어 보이는 이야기 같지만, 복잡한 감정의 플로우가 있다.


겪지 않아도 됐을 고통과 후회 그리로 외로움이란 걸 알게 된다.

굳이 겪고 싶지 않은 인생의 큰 파도들은 느닷없이 왔다가 간다. 


파도가 지나고 나서야 그래도 의미가 있었다고 자조하게 된다.

아픈 만큼 성장하는 것도 맞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하지만 얻는 게 있다. 포기와 내려놓음.

바닥을 치고 올라온 마음은 지옥을 경험하면서 사는데 많은 게 필요 없음을 깨닫게 된다.


삶이란 참으로 부질 없구나.